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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1기, 다른 운명: TNM 병기를 넘어, 공간생물학(Spatial Biology)이 말해주는 암의 진실

환자와 의사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임상 현장에서 암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수술이 기술적으로 실패했을 때가 아닙니다. 표준 가이드라인대로 치료했는데, 결과가 우리의 예측과 다르게 진행되어 암이 재발했을 때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초기 (Stage 1) 폐암 환자, A와 B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권중 - 3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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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의사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임상 현장에서 암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수술이 기술적으로 실패했을 때가 아닙니다. 표준 가이드라인대로 치료했는데, 결과가 우리의 예측과 다르게 진행되어 암이 재발했을 때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초기 (Stage 1) 폐암 환자, A와 B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TNM 병기 기준으로 두 환자는 완벽히 동일합니다. 종양의 크기는 3cm 미만이었고, 림프절 전이도 없었습니다. 현재의 표준 진료 지침 (NCCN Guidelines, ESMO Guidelines)에 따라, 두 환자 모두에게 수술 후 추가 항암치료 없이 6개월마다 경과를 지켜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환자 A는 5년 뒤까지 재발이 없어 완치 판정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환자 B는 1년 반 뒤에 암이 재발하여 전신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생겼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환자 B에게는 수술 직후 추가적인 보조 항암요법이 필요했거나, 더 자주 surveillance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TNM 병기 시스템으로는 이를 판단할 근거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닙니다. 의사가 확신을 가지고 치료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해석 가능한(Interpretable)' 데이터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공간생물학(Spatial Biology)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입니다.

지도의 한계: 해부학(Anatomy)은 생물학(Biology)을 완벽히 대변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 암 치료의 절대적인 나침반은 TNM 병기(Tumor-Node-Metastasis)였습니다. 암이 얼마나 큰지 혹은 침투하고 있는지 (T), 림프절에 전이가 되었는지(N), 다른 장기에 퍼졌는지(M)를 기준으로 1기부터 4기까지 나누는 이 시스템은 암의 '지리학적 위치'를 알려주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지도는 암의 가장 중요한 성질인 '생물학적 성격(Biology)'까지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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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처럼, 겉보기에 똑같은 1기 암이라도 그 내부는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암은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고, 어떤 암은 공격적입니다. 환자 B가 재발한 이유는 암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암세포가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방식, 즉 종양 미세환경(TME, Tumor Microenvironment)이 환자 A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 '크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포 구성과 공간적 관계(Spatial Context)'를 봐야 합니다.

Black Box를 열다: '공간적 문맥'을 읽는 기술

임상 연구자들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병리 슬라이드(H&E)를 아주 자세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암세포 주변에 면역세포, 섬유아세포, 혈관세포 들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본 것이죠. 그 중에서도 면역세포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장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Immunoscore'와 같은 개념이 등장하며, 암 조직 내에 면역세포가 많을수록 예후가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유전체 분석 (Bulk Sequencing) 이나 단순한 세포 계수는 여전히 블랙박스(Black Box)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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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포를 갈아서 정보를 전달해주던 bulk 의 시대에서 하나하나의 세포의 정보를 전달해주던 단일 세포 수준을 지나, 현재는 단일 세포의 위치정보를 줄 수 있는 기술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Source: LGMartelotto on X)

면역세포가 100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단순히 갈아서 분석하는 검사는 "면역세포가 많으니 예후가 좋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실제 공간(Spatial)을 들여다보면, 그 면역세포들이 암세포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겉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들이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종종 면역세포가 아닌 다른 곳에도 숨어 있습니다.

Spatial Biology가 알려주는 진실: Immune, Fibroblast, Endothelial cells

면역항암치료의 발전과 성공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라는 공간 내의 immune cell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공간생물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장 강력한 통찰 중 하나는 바로 장벽의 역할을 하는 섬유아세포 (Fibroblast) 의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그저 암세포를 지지해 주는 구조물 정도로 여겨졌던 이 세포들이, 공간 분석을 통해 보니 암세포를 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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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broblast의 infiltration의 정도, 암세포와의 공간적 배치에 따라서 암의 공격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인 포트래이의 선행 연구 결과 (Biorxiv 2024: 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4.05.16.594592v1)

환자 B의 케이스를 공간적으로 다시 분석해 본다면, 아마 A환자의 것과 여러 측면에서 다르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암을 사멸하는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의 침윤 정도, 암과 섬유아세포 사이의 공간적 밀접성, 그리고 암세포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섬유아세포의 장벽과 같은 암의 예후와 연관된 공간적 특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존 bulk혹은 단일세포검사에서는 "T세포가 많음"으로 나와서 면역항암제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예측했겠지만, 공간을 본 의사라면 "T세포가 많지만 접근을 못 하고 있으니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정반대의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간생물학이 주는 설명 가능한 근거(Explainable Rationale)입니다.

관찰을 넘어, 최적의 치료 결정을 도와줄 공간 생물학

결국 모든 기술의 끝은 환자를 향해야 합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제한적이었던 암의 평가를 공간생물학은 새로운 평가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공간 생물학은 암의 '주소(Stage)'가 아니라 '설계도(Blueprint)'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동안 '평균적인 환자'를 치료해 왔습니다. 하지만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전쟁은 환자마다, 암 조직마다 너무나 다릅니다. 환자 개개인의 암이 가진 고유한 설계도와 약점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막연한 확률 싸움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한 확신을 가지고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포트래이 (Portrai)가 가고자 하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H&E 슬라이드 속에 숨겨진 이 복잡한 공간 정보를 AI로 해석하여, TNM 병기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최적의 치료 경로를 의사와 환자에게 제시하는 것. 새로운 치료제의 발굴, 치료 효과의 예측을 통한 치료 방향 설계 등, 공간 생물학은 너무나도 우리에게 암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현미경 너머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바로 환자를 살리는 가장 정밀한 전략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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